글/扈一麥
히브리서 11장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흔히 믿음장(狀) 이라고 정의하기에 설교를 많이 듣고, 읽기도 많이 읽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요셉,모세,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은 과거 사람들이 가졌던 것보다 더 확실한 믿음입니다. 우리 신약성도들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믿습니다. 곧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라는 분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 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약속이 성취된 것임을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하시는 바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무죄한 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셨고, 죽으셨던 이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본래 무죄한 자이셨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증거가 부활로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여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 :13 ~ 14)
그러면 히브리서 11장은 무슨 믿음을 말하는가요? 11장 1절-3절에는 믿음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이 서신을 읽는 유대계와 이스라엘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유대 의식과 희생제사의 가시적 속성으로 인해 그들의 믿음이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유대교로 되돌아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너무나 많은 기적적인 실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그 실체성을 의심한 것입니다. 믿음의 구원이냐? 아니면 옛 방식대로 율법을 지켜고 제사를 드려서 구원 받는 것이냐? 귀로에 처해있는 히브리인들에게 구원의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인물들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소개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선견자들은 단지 그들의 덕을 기르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실상 그들 모두는 잘못을 범했으며 때때로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성경이 이들에 대해 기록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비범한 일을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홍수 이전의 세 명의 인물에 대해 소개합니다. 4절『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창세기 4장1절-16절에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벨은 양을 쳤으므로 양을 드렸고, 가인은 농부였으므로 곡식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구약의 어디에서도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는지에 대해 설명이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왜 아벨이 믿음의 선진에 포함된 것인가에 대해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이라는 것, 목동이라는 것, 양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는 점, 형 가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 정도가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 해답이 신약에서 설명이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웠다고 했습니다(요일 3:12). 그러나 역시 왜 행위가 악한지, 의로운지에 대해 이해하기 힘듭니다. 히브리서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벨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믿음이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에서 아벨을 의롭게 보셨고 그를 옳다고 인정하신 것에서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히브리서 기록자는 아벨에 대해 흥미로운 것을 설명합니다. 4절 하반절에「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아벨은 생전에 기록에 남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죽은 이후에 분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벨이 죽은 후에 말을 한다고 한 히브리서 기록자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아벨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하니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으며, 아벨의 피는 예수님의 피처럼 중보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아벨의 비교는 여기까지 입니다. 후반에 가면 히브리서 기록자는 아벨의 제사보다 그리스도의 피가 더 낫다”(히12잘24절)라고 말합니다. 아벨의 피는 보복을 호소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용서와 화평을 가져왔습니다.
믿음의 인물로서 에녹이 등장합니다. 5절『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창세기 5장24절은「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설명합니다. 창세기에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70인역(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책)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고 번역했습니다. 6절에「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하나님은 이러한 구약의 사람들이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사실상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로 작용합니다. 믿음은 절대적인 요구사항입니다.
7절에 노아를 소개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노아는 창세기 6장-9장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노아가 믿음의 사람인 것은, 하나님은 노아에게 미래의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진행 될 홍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창 6장8-9,17).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드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노아가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결코 범죄한 적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창세기 9장20절-21절에는 그가 지은 죄 중의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살았고 그 점이 하나님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8절-19절은 홍수 이후에 아브라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한 것같이 길게 설명됩니다.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적은 신약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히브리서 기록자는 6장13절-15절에서 그의 믿음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브라함을 믿음에 의한 칭의의 한 예로 활용하였고(롬 4장), 야고보는 행위로 이어지는 믿음의 예로 아브라함을 활용했습니다(약 2:20-24).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①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갔다(11:8). ②늙어서 아들을 낳았다(11:11).③외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11;17).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소유하였습니다. 8절에「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를 창대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를 떠났고 하란에서 아비 데라가 죽고나서 가나안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철썩 같은 믿음을 보이기보다는 깨지고 실수를 합니다. 아내 사라를 목숨 부지를 위해 이방인 왕에게 동생이라고 속였다가 하나님이 바로 잡아주시기도 합니다. 그것도 두번이나 그럽니다. 아들 이삭을 낳는 과정도 보면, 몇번 이야기를 해도 못 믿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예 비웃기조차 합니다.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그런데 히브리서 기록자는 아브라함을 굉장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호칭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인가요? 통상적으로 믿음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믿음은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항복 이전에 하나님이 원인이 되셔서 은혜와 긍휼, 자비, 기적과 복을 결실시키시는 통치와 영역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의 믿음은 그가 한 행위에 대해 책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거짓말 하면 벌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재물을 탐하면 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에서 진행되는 총체적인 과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께 올바르거나 의롭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하니 의롭다고 인정하셔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믿음장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브라함에 대해 계속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남은 여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한번도 그 땅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장막에 거하며 외방에 있는 것 같이 그의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성을 건설하지도 않았고 아들 손자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수 백년 후에 후손들의 과제가 된 것 뿐입니다.
이삭은 약점이 있고 뚜렷하게 잘 한 일도 없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창 26장2절-5절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곱 역시 죄를 짓고 속이는 기록들이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야곱은 가지려는 열심이 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보호하시면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창세기 28:10-22절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에 형 에서보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게 됩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그래서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져야 합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야곱은 에서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믿음과 열심이 컸다는 것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권인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야곱에게 팔아넘길 정도로 하나님의 축복권을 가벼이 여긴바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번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 학자들은 12번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어려운 시험이 아닌 것도 있지만 마지막 믿음의 시험이 이삭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하나님은 이삭을 희생제단에서 구해주셨고 아브라함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19절에「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혹시 죽이더라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심지어 자기의 종에게 그 소년이 살아서 돌아 올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창 22:5). 이것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삭과 달리 실제로 그리스도는 죽음을 경험하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나셨습니다. 참조자료=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가? 순종의 조상인가? 기드온은 왜? 실패자가 되었나?
이후로도 많은 선진들의 믿음을 기록하였지만 그들을 다 설명하자면 지면을 몇장 더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줄이는데 선진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설명하면서 믿음을 강조합니다. 선진들 그들의 삶은 온전치 못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이고 하나님을 거억하고 믿음없는 행동을 하고 택함 받았지만 자기의 사역을 다하지 못하고 삶을 마치거나 자녀들을 잘못 가르쳤거나 나실인으로서 자기 직분을 잘못하여 일찌기 사역을 끝내거나 이러한 자들인데도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히브리서11장에 기록한 것은 믿음과 삶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비록 행위는 나빠도 구원은 받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입니다.행위는 구원받지 못할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주의 말씀으로 태어난 자는 혹시 죄를 져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한 구원은 취소가 되지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히브리서 11장 입니다.
기드온은 인생 말년에 왕 같이 살았고 자녀교육이나 제첩 문제가 문란한 사사였고. 바락은 선지자의 명을 거역한 사람이었고, 삼손은 나실인의 사명을 버리고 이방 여인과 죄를 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죄와 상관없이 능력이 임하였고, 죄 값은 일찍 사역을 끝내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자들입니다. 입다는 깡패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특출한 자였으며 그로인해 딸을 불살라서 하나님께 드린 자입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였고 간음한 자였고 죄 댓가로 아들에게 쫓겨다녔고 백주에 후궁들이 겁탈당하는 수모를 겪은 자이지만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 자입니다.
선진들이 그러한 것같이 우리도 어떤 경우라도 구원은 최소되지 않아서 천국은 갑니다. 다만 죄를 지으면 천국 갈 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지만 육신의 관계성 죄는 죄 값으로 고난을 당하고, 또 사역을 내려놓게 되고, 마귀에게 맡겨서 육신을 치게도 하십니다. 계명은 육신에 해당합니다. 십계명을 구원하는데는 폐하셨지만 그것을 지키는 자는 육신의 복을 받습니다.
계시록 22장 7절에『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마태복음 10장 41절-42절에『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지옥갈 죄를 용서받아서 구원받고 행함은 상급입니다. 계명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보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육신의 죄 짓는 것을 무서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죄는 마귀가 주관하므로 정죄하고 빼았고 죽이기까지 하지만 생명인 영(靈)만은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잘 이해 하셔야 합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적인 죄(천국갈 문제)는 사해지고 가리워 집니다. 육적인 죄는 계명인데 지키면 복 받고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고난이 따르며 , 상(賞)도 없고 육신이 조기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5장 5절에『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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