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童 김학철 신앙 칼럼

달라이 라마가 얘기한 "창조주가 있는 종교"

낮은곳에 서서 2016. 10. 1. 23:13




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티베트 종파인 라마교의 영적 지도자를 일컫는다.

1578년에 최초로 라마교 지도자에게 부여된 이 명칭은 '지혜가 넓은 바다와 같고 큰 덕을 소유한 위대한 스승'으로 번역될 수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 정치 지도자이기도 한 그는 중국 공산당이 1959년 티베트를 지배하기 전에는 티베트의 실질적, 정신적 지도자이며

통치자였다. 198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종교는 여전히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현실의 삶에서 매우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행복 메세지를 전하는데 ...

"물질적 행복은 우리의 오감에 달렸고, 마음의 행복은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하면서

"마음의 행 불행은 육체의 행 불행에 비해 크고 중요하다. 몸이 힘들어도 마음과 의지가 굳건하다면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 하였다.


그가 강조한 내용중에 창조주가 있는 종교창조주가 없는 종교를 구분하여 말한 대목이다.

"창조주가 있는 종교가 있다. 목적은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나? 사랑과 연민 때문이다.

하나님이 분노로 세상을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그분의 성품인 연민을 실천해야 한다.

불교는 창조주가 없는 종교이기에 스스로의 행동이 만든 인과(因果)와 업(業)에 따라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

그리스도(구원자, 메시야)이신 예수, 즉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피조물인 인간의 불치병 '죽음'과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입고 잠시 이 땅에 오셨던 하나님, 그리스도이신 예수 !

지구상에서 수 많은 민족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위대한 한 시대의 인물 달라이 라마가 지적한

"그분의 성품인 연민(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 분 예수는 오셨다.

달라이 라마의 표현대로 불교는 "창조주가 없는 종교이기에 스스로의 행동"이 중요한 인생의 해결 실마리가 된다.

다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 제자들은 이같은 "스스로의 행동"에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을 자신에게는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만큼 스스로를 연약하다고 믿기에 스스로의 의지에 맡기길 거부하고, 자신의 불가능과 연약성을 내어 맡길 분을 찾아 나선 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한마디로 무능한 자들이다. 무력한 자들이다.

그러기에 전적으로 자신을 대체해 줄 분을 그리스도로 인정한 자들이다.


복음서(성경)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이가 하나님(창조주)을 모르는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베드로전서 1장 18절)속에 살아 왔다.

그런데 그 행실 가운데에서 "대속함(누군가 대신 나의 죄값을 치뤄줘서 나의 심판죽음을 맞을 죄값을 없애줌)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세상의 그 어떤 값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예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로 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장 18~19절) 

성경은 이것을 '진리'라 말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베드로전서 1장 22절)


창조주가 있는 종교인 그리스도(대속자이며 구원자)를 예수로 믿는 기독교는 '믿음'을 강조한다.

이 믿음이 바로 '스스로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피조물인 인간 자신에게는 전혀 없다고 인정할 때에 발생하는 근원이다.

이 믿음에서 구원의 문제가 등장하고 또한 완성이 된다.


'구원'에 대하여 성경은 '대상'과 '징조'를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1장 9~11절에서 보면, '믿음'의 결과와 목적은 '영혼의 구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흔히들 오해를 초래하는 세상에서의 경제적 육체적 견고성이나 온전함에 대부분이 목표를 맞추는 것과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구원에는 제 1차 대상이 '영혼'이라는 점이다. 

창세기 1장 24~27절에서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먼저 땅에 각종 생물을 그 종류대로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만드시고,  그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를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다.

구원의 대상인 "영혼"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의 영혼이다.  

앞서 창조된 가축이나 짐승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 지금 우리 인간에게서는 부패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부패된 이 영혼이 바로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이다.

이 헛된 행실을 스스로 갱신할 수 없어 대신 재창조해 주신 분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다.

즉, 구원이란 "누구를" 그리고 "어떠한 때"(베드로전서 1장 11절)를 성경에서 지시하는지를 발견하고 깨달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늘에서 내려진 '계시'(열어 보여 주어야만 알수 있는 것)를 깨달아 갈 수 있다.

이 비밀의 '계시'는 바로 구원과 직결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예수의 나를 위한 대속 죽음과 

그 죽음을 이기게 하고 다시 살아나 부활케 하신 부활 사건,  그리고 40일 동안 제자들과 식사도 하며 담화도 하시고 가르치시며 보이신

그 부활의 몸으로 다시 계시던 하늘의 보좌로 승천하신 사건, 또한 구름타고 오르시던 그 모습 속에서 쳐다보던 제자들에게 천사를 통해

약속하셨던 말씀 -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장 11절)


이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예수님 계신 그 나라를 나의 미래의 내가 살아가야 할 영원한 그 나라로 소망하는 삶 !

이것이 바로 '믿음' - 그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