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애증

( 사람은 언제나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을 찾으려 고민한다 - 그게 인생 )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돈' 만큼 찰떡지게 관계를 잇고 사는것이 없다할 정도다.
어쩌면 아침 일찍이 기상하여 서두르는 아침의 시작이 그 방향은 돈이다. 이에 아니라 단정할 수도 없다.
온 하루를 지치는 고약스런 삶을 살아진것도 위안이 된다면 그 또한 돈이다. 이 또한 아니라 단정할 수도 없다.
이렇듯이 돈은 내 육신의 삶 결실이기도 하다. 그 열매가 달면 달수록 삶의 만족도는 삶의 질로 연결되어져 평가된다.
삶의 질!
우리는 뉴스나 귀에 전해지는 얘기들을 통해 어느 사람의 질을 논한다. 왜 저렇게 살지?
세상속에서 회자되는 인생들의 애환얘기들 대부분은 돈과 결부되지 않은 스토리가 없다.
돈은 마치 인생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썩어질 것같은 위기를 해결해 주는 방부제 같다.
그러다보니 방부제 없는 무첨가 청정한 삶은 그 전개가 불가능해 진다.
성경에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등장한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이름이 당당히 세워지는 것은 부자이지
그 집앞에 노숙하며 빌어먹고 살던 거지의 이름이 부각되는 법은 없다.- 이게 세상법칙
세상살때에 부자의 이름이 어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때론 칭송도 받지 않았겠나?
과연 그 세상에서 그집 앞 거지의 이름을 아는이나 기억하거나 불러주는 이가 존재나 했을까?
문제는 세상에서는 선하든 악하든 그 이름이 유명했으리라
다만 하나님이 누구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냐이다
성경에서는 부자의 이름은 없다. 오직 거지의 이름만 기록되고 보존되고 있다. - 나사로
돈이 많아 자기 삶만을 위해 쌓아두고 살던 부자(불의의 재물=맘몬),
그리고 바로 문앞의 이웃 - 거지 나사로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앞에 버려진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채우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부자, 그 최후 -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만일 부자가 평소에 자기의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 쓰고 쌓아두고 감추기에 급급하기 전에
문앞에 버려진 한 인생 거지를 위해 아주 조그마한 나눔이라도 진정으로 펼치면서 인생의 본분인 사랑을
나누며 손길을 폈다면,
거지 나사로는 자기의 보배인 영원한 그 처소 자기가 준비해둔 그 나라 그 복음을 나누며 안내 했으렸만 ....
돈에 자기 미래를 몽땅 맡겼던 부자의 미래
그리고
돈에는 절망적이지만 영원함에 자기를 고통과 고난중에도 오로시 맡겼던 거지 나사로
그들의 미래를
오늘은 우리의 미래의 길로 가르치고 있는 성경의 제시에
이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