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004_01) 내 의의 하나님 <시편 4:1-2>
(시004_01) 내 의의 하나님 <시편 4:1-2>
2014-02-17(월) 새벽기도회 설교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예쁘게 보면 다 예쁘지만 밉게 보면 다 밉게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고슴도치 어미의 심정으로 우리 성도를 예쁘게 보십니다. 바로 그런 고백을 시편 4:1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편 4~55편은 대부분 다윗의 시이며 “영장으로 한 노래”라는 제목이 많습니다. 영장은 지휘자라는 말이며 이 시들은 성가대 찬양곡으로 사용된 가사라는 말입니다. 현악이 곁들여진 그윽한 영가(靈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4편은 3편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길이도 똑같이 8절이고 분위기도 비슷하고 3:2은 4:6에서, 3:5은 4:8에서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도 압살롬의 난을 피할 때 지은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3편이 환난 중에 지었다면 4편은 환난이 끝나고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었을 것입니다.
4:1은 3:4과 관계가 있으나 반복은 아닙니다. 하여간 4:1에서 다윗은 기도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기도만이 해결책인 것을 다윗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도 그렇고 천만인이 죽이려 달려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어떤 곤란 중에라도 부르면 들어 주시는 분이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은 향해 뭐라고 부르는지 봅시다. 3:3에서 방패, 영광, 회복자라고 부르던 다윗은 4:1에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하고 부릅니다. 표준새번역은 이 말을 “나의 옳음을 변호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고 공동번역은 “내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느님”이라고 번역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옳음을 변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옳다고 따지고 들면 더욱 추하게 될 뿐입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쉬울 것을 굳이 흙탕물에 뛰어 들어가 진흙탕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고백한 후에 2절에서 다윗은 인생들을 향해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겠는가?”하고 반문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남의 영광을 욕으로 바꿔 버리려고 합니다. 남을 깎아 내려야 자기가 한 치라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배가 아파서 못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헛된 줄 알면서도 그 헛된 일을 계속합니다.
이런 인생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비해서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우리더러 욕을 하건 말건 하나님은 나를 의롭게 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얼굴을 들게 하실 것이며(3:3) 곤경에 처했을 때 너그럽게 대해주시는 분이십니다.(4:1)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원칙대로 심판하시면 아무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다윗은 간음죄에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너그러이 보아 주시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사랑입니까?
우리의 의로움도 결코 다윗보다 낫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까지도 너그럽게 봐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에게나 우리에게나 하나님은 “내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욕되게 하여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뛰어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가 드릴 고백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내 의의 하나님, 즉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