牧童 김학철 신앙 칼럼

'회개'의 참 의미

낮은곳에 서서 2017. 6. 26. 18:20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의 본질은 '회개'에 있다.

이 말은 '회개'에 대한 바른 이해만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말씀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인생은 땅에서의 삶이 '외국인'이요 또한 '나그네'임을 확인하는 작업부터 밟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14절을 보면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냈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땅에서의 삶이 본향을 떠난 삶이어서 외국인, 나그네의 삶이었음을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될수밖에 없었나?


창세기 1장 27~28장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하셨다. 명령이었다.

그들이 처음 살던 곳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같이 있던 에덴 동산이었다.

애초에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향하여 생명나무에게만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는 그 생명나무보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한테만 온통 빠져 들었다.

그 결과 최초의 인간인 그들 두 남여는 에덴 동산에서 축출 당한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 하나님의

규례가 적용되는 곳이었다.

엄하게 명하시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것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경고까지 들은 그들이었다.

이 말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간의 죽음과 연결될 수 있는 나무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덴 동산을 쫓겨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에덴에 있던 '생명나무'와도 완전하게 차단되어 살아가야 했다.

이 생명나무와의 재 접촉은 하나님 명에 의해 불칼을 두고 그 길을 지키고 있는 그룹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을 받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창조와 그 흐름의 역사에 따라 인생들은 지금 이 현실의 시간까지 '죽음'과 직결되어 있는 타향의 땅에서

나그네의 삶, 외국인같은 이방인의 삶을 우린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생들이 해오는 일과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5)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이것이 곧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롬 2:5)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의 현 주소다.


여기에서 성경은 두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로마서 2장 6~8절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갚으심)하시되 견디며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반대로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써 대하신다는 선언이다.

여기에서 '선'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뜻(성경에 이미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하며, '불의'란 그 분의 뜻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처음의 전개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첫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살수 없게 된 것은 스스로 지혜롭게 되어 하나님 처럼 삶이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출발 그 자쳬였다.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은 곧 영원한 삶이 없는 '죽음'인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자체는 하나님 존재를 부인하는 '죄를 범하는 것'(롬 3:23)이다.

'죄를 범한 것은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롬 3:23)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가야한다는 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이 얼마나 우리를 친근하게 가르치고 있던가?

구약(예수님 오시기 전 시대= 옛 언약이라고도 함)의 마지막 성경 말라기 4장 6절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가(선지자 엘리야)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생들을 그 자녀로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 자녀들인 인간들과의 관계가 완전하게 끊켜져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사람의 몸을 입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오셨다.

오신 이후 그 본 모습을 나타내기 직전 선지자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기 시작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훗날 예수님의 제자가 된 마가는 성경에 기록하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시었다고 하였다.

세례 요한의 선포에서도, 예수님의 선언에서도 '회개'는 천국(하나님 나라)과 직결되어 설명되고 있다.

바로 창세기의 '에덴'의 생명나무가 있는 그 곳을 말씀하고 있다. 물론 옛 에덴이 천국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생명나무'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 '생명나무'의 길목에는 지키는 불 칼과 그룹들이 있다.(창 3:24)  아무나 가고자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 14절에서 처럼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들임'을 나타내야 한다. 생명나무 길목을 지키게 명 하신 하나님께 마음이 향하고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를 마음을 열고 모셔야 한다. 그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6)고 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의 모습을 되찾기 위하여 그 본향을 사모해야 한다. 그러러면 그 본향을 보이러 오셨던 예수 그 분을 먼저

찾으려 해야 한다. 예수를 찾아 가는 길이 회개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