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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 교육 자료실

[스크랩] 사도 바울 ⑦ 예루살렘에서 로마로(A.D 58-67년)-로마행 A.D 61년 -감옥-순교

by 낮은곳에 서서 2012. 9. 20.

앞 못 보던 사도 성 바오로의 치유             (이하사진출처- http://info.catholic.or.kr/)

 

안수를 받는 사도 성 바오로

 

이방인의 사도 성 바오로

 

유다인들에게 호소하는 사도 성 바오로 (사도 21,37 - 22,3)


37 그렇게 진지 안으로 끌려 들어가던 순간에 바오로가, “당신에게 말을 좀 해도 되겠소?” 하고 천인대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천인대장이 되물었다. “당신은 그리스 말을 할 줄 아오? 38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 전에 폭동을 일으켰다가 자객 사천 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 그 이집트 사람이 아니오?” 39 바오로가 대답하였다. “나는 유다 사람으로, 킬리키아의 저 유명한 도시 타르수스의 시민이오. 청컨대 내가 저 백성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40 천인대장이 허락하니, 바오로는 그 층계에 서서 백성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리하여 아주 잠잠해지자 바오로가 히브리 말로 연설하였다.

 

 유다인들과 토론하는 사도 성 바오로(사도 17,1-4)


1 바오로 일행은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유다인들의 회당이 있었다. 2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3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복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

 

아레오파고의 사도 성 바오로 (사도 17,16-34)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오로

 

 임금 앞에서 설교하는 사도 성 바오로 

 

 감옥에 갇힌 사도 성 바오로에게 발현한 그리스도(사도 23,8-11)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로마를 향해 떠나는 사도 성 바오로(사도행전 23장 11절)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사도 성 바오로가 탄 배의 좌초(사도 27,39-44)


39 날이 밝자, 어느 땅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해변이 평평한 작은 만이 보였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배를 그 해변에 대기로 작정하였다. 40 그들은 닻들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또 두 키를 묶었던 줄을 풀었다. 그리고 앞 돛을 올려 바람을 타고 해변 쪽으로 배를 몰았다. 41 그러나 그들은 물 밑 모래 언덕에 빠져 배를 주저앉히고 말았다. 이물은 박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세찬 파도에 부서지기 시작하였다. 42 군사들은 수인들이 헤엄쳐 달아나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을 죽이기로 계획하였다. 43 그러나 백인대장은 바오로를 살리고자 하였으므로, 군사들이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명령을 내려 헤엄칠 수 있는 이들은 먼저 뛰어내려 뭍으로 가고, 44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널빤지를, 일부는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가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모두 무사히 뭍으로 나오게 되었다.

  

바다에서 사도 성 바오로에게 나타난 천사(사도 27,21-27)


21 그리하여 모두 식욕마저 잃었다. 그때에 바오로가 그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여러분, 내 말을 듣고 크레타 섬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피해와 손실을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23 사실 나의 주님이시고 또 내가 섬기는 하느님의 천사가 지난밤에 나에게 와서, 24 ‘바오로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황제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도 너에게 맡기셨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5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천사가 나에게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6 우리는 어떤 섬에 좌초하게 되어 있습니다.” 27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떠밀려 다닌 지 열나흘째 밤이 되었을 때였다. 자정 무렵에 선원들은 배가 육지에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병자를 치유하는 사도 성 바오로

 

병자를 치유하는 사도 성 바오로(사도 28,7-9)


7 그 근처에 섬의 수령인 푸블리우스라는 사람의 소유지가 있었다. 그가 우리를 손님으로 맞아들여 사흘 동안 친절히 대접해 주었다. 8 마침 푸블리우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는데, 바오로가 그에게 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를 고쳐 주었다. 9 이런 일이 일어난 뒤에 그 섬의 다른 병자들도 오자 바오로는 그들도 고쳐 주었다.

 

로마를 향해 출항하는 사도 성 바오로 (사도 28,10-14)


10 그들은 우리에게 큰 경의를 표하고,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날 때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실어 주었다. 11 석 달 뒤에 우리는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났다. 그 배에는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져 있었다. 12 우리는 시라쿠사에 상륙하여 사흘을 머물렀다가, 13 그곳에서 다시 닻을 올려 레기움에 닿았다. 하루 뒤에 남풍이 불어 우리는 이틀 만에 푸테올리에 이르러 14 형제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청을 받고 이레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로마에 도착하였다.

 

사도 성 바오로의 순교 

 

 

 

 

사도 바울 ⑦ 예루살렘에서 로마로(A.D 58-67년)-로마행 A.D 61년

 

 

 

 

 

예루살렘에서 로마여행 [A.D 58 ~ 67년]


* 예루살렘 도착과 체포, 로마행 등 일지 (행21:17~)


- 3차 전도를 마치고 이스라엘에 도착해 피포(被捕붙잡힘)됨 A.D 58년

- 가아사랴에서의 감금 A.D 58 ~ 60년

- 벨렉스 총독의 후임으로 베스도 부임 A.D 60년

- 바울이 가이사(로마황제)에게 상소하자 바울 로마로 이송, 로마 도착 A.D 61년

- 제 1차 로마 감금으로부터 석방 A.D 63년

  * 바울의 죽음 A.D 67년 - 당시 로마황제 '네로'의 기독교 박해에 따라 목이

    잘려 순교당함.(로마 시민권자였으므로 십자가형을 당하지 않고 목이 잘려

    순교당합니다.)

  * 바울이 죽은 연대는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A.D 67년, 히에로님스에 의하면

    A.D 68년입니다.


로마행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오순절 전날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을 따뜻하게 맞았다. 성도는 이 명절 때문에 각처에서 모여들은 유대인으로 붐볐다. 그 중에는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그에게 적의를 품은 극단적인 반바울주의자들도 섞여 있었다.


팔레스틴 이외의 곳에서 로마 관헌의 제지로 바울 살해의 목적을 수행할 수 없었던 그들은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온 성이 소동하여 바울을 죽이려 했으나,


로마의 천부장이 달려와서 바울을 붙잡아 안토니아의 영문으로 끌어갔으므로 간신히 무사하게 되었다.


누가는 당시의 사정과 그에 뒤따른 그에 대한 신문과 그의 변명 등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행 21:27-23:10). 유대인들 사이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까지 맹세한 일단의 혈맹단(血盟團)까지 조직되어 바울의 신변에 위험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므로,


그는 밤중에 로마 군대에 의해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로마의 총독 벨렉스의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벨렉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고, 그의 후임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두 사람이 다 신속한 처리를 하지 않고 바울을 2년 동안이나 옥에 가둔 채 두었으므로 그는 분연히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리하여 그는 백부장 율리오의 호송하에 로마로 가게 되었다. 당시 가이사랴에서 로마에의 항해에는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도 동행했는데, 이 항해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7장에 매우 자세하게, 또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고대의 항해기라는 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귀중하고 또 흥미진진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다한 곤란을 겪은 다음 바울 일행은 AD 60년 초봄 보디올에 도착, 거기서 주 안의 형제들의 영접을 받고 마침내 로마에 입성했다. 이렇게 다년 간의 숙원을 이룰 수있었다고는 하나, 결박된 몸으로서 로마 입성이란 그도 감개무량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재판의 날을 기다렸다. 로마에서는 많은 사건이 산적하고 있었으므로 바울의 성소가 심의될 차례가 오기까지는 실로 2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 동안 그는 헛되이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다. 많은 동역자가 그에게 출입한 것은, 그때 집필된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의 끝에 열거되어 있는 인명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빌레몬서는 이때 있었던 재미있는 한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빌립보서 1:12- 18에 의하면, 그 당시 바울은 더 적극적인 전도를 하여 비상한 성공을거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바울이…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쳤다고 말을 끝맺고 있다.


(인터넷자료)

바울서신(~書信, 書簡)-로마감옥 옥중서신 등 13통  


[영] Pauline Epilstes 신약성서 중 바울이 쓴 편지의 총칭.

 

                                                  *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


학자에 따라 다소 의견의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 13통을 말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4대서신,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은 바울이 매인 몸으로 쓴 것인데서 옥중서신으로

불리운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는 18세기 이래, 일괄하여 목회서신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 내용이 교회의 질서 유지에 관한 훈계가 중심이고, 서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바울 서신 중에서 최고의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이다. 목회서신의 저자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한편은, 바울의 편지 그대로 라는 것이고, 다른 편은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제2세기중엽 바울의 제자의 1인이, 디모데와 디도의 이름을 빌려, 일반 교회의 지도자를 목적하여 썼다는것이다. 이 후자는 극소수이고, 근대에 들어와서 주로 주장되고 있다. (인터넷자료)

 

* 로마 감옥안에서 각 교회에 안부와 격려의 편지를 쓰는 사도 바울. 이 곳에서

  옥중서신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쓴다.

 

 

*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고

  이방인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거나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고 살해 위협을 받기도하는

  등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다 겪었습니다.

  위 감옥은 그리스 빌립보에  있는 감옥으로 사도 바울과 실라가 함께 갇혔던 곳 입니다.

 

바울의 로마 전도 여행(행 21:17-28:31). As within, so without

2009.06.28 19:12 | 23. 특강 | 사랑한다현진아

http://kr.blog.yahoo.com/leemy2978/1364664  주소복사

청년부 특강

                                                                                  2009. 6. 26 주일, 오후 2


 

목표 :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해 본 단기 선교의 전략

-      4월말, 바울의 회심과 1차 전도여행(Be the miracle !)

-      5월말, 바울의 2차 및 3차 전도여행(Think big, Start small)

-      6월말, 로마 전도 여행(As within, so without)

-      7월말, 성경적인 선교의 필요성

 

제목 : 바울의 로마 전도 여행( 21:17-28:31). As within, so without

 

 

 

As within so without

그리스의 시인 헤르메시아넥스(Hermessianex) 가 남긴 명언입니다.

나의 내면이 나의 외면을 결정하고, 나의 태도가 나의 현재를 만든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하면 된다 고 외칩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되면 한다 고 외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을 결정합니다.

 

한 젊은 수도사가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5년뒤, 수도원장이 그에게 두마디 말은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침대가 딱딱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0년뒤, 수도원장이 다시 두마디 말은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음식이 차갑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5년뒤, 수도원장이 다시 두마디 말은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수도 생활을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는게 좋겠군요. 당신은 불평만 말했습니다.

더 수도를 하여도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려면,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명령을 가장 긍정적인 사고로 진행한 사람입니다.

 



1.   로마 전도여행의 개요

 

사도 바울이 1, 2,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나서, 소아시아, 그리스의 전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심장부 로마 전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 차례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다루는 내요의 범위는 사도행전 21-2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 AD 58 :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됨

- AD 60 : 2년 동안 가이사라에 감금

- AD 61 : 여러 달 동안 로마에 가는 과정

- AD 63 : 2년 동안 로마에 감금

 

그 이후의 학자들의 추정

- AD 66 : 석방후의 사역 다른 나라 사역이 있었음(스페인등)

- AD 67 : 로마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

 

1-3차 전도여행까지는 복음 전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바울이 핍박과 고난이 설명되지만, 초점은 복음의 확장입니다.

로마전도는 바울의 고난이 초점이 됩니다. 목표는 로마 입성입니다.

 

2.     바울의 예루살렘에서의 체포( 21:18-36).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될 당시의 유대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로마 총독은 벨릭스(AD 52-60)입니다. 이 당시 사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열심당원은 로마 군인과 로마 앞잡이를 공격하였으며, 민족주의가 강해졌습니다.

 

바울이 소아시아 전도여행시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일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들었습니다.

 

21: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이로인해 유대인들은 바울을 꼭 손을 봐야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오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드리는 현장에서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21:30).

  유대인들은 판결도 없이 바울을 죽이려 했고, 로마 군인이 구해줍니다.

바울을 핍박한 사람은 이방인이 아니고 바울의 친구 유대인들입니다.

 

 

성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귀들이 길을 가는 성자에게 시험을 걸었습니다.

여자로 유혹했으나, 성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금덩이를 보여주었으나, 성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협박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귀들이 실패를 하고 우울해 있는데, 이때 대장 마귀가 나섰습니다.

대장 마귀가 한마디를 성자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그 순간 별안간 성자의 얼굴이 확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귀들이 대장마귀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간단하지 당신 동생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대주교가 되었어

동생이 대주교가 되었다고 하니 시기/질투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기 질투가 큰 적입니다.

신앙인들이 생각 외로 이것이 잘 안됩니다.

 

 

유대인들에게 바울이 공격 대상이 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온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이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바울은 지성인입니다. 12제자들은 어부나 세리로서 유대인들이 무시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로서 배운 사람입니다.

더욱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회심했다고 하면서 그 반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 유대인들의 입장으로는 그냥 놔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불쌍한 바울, 이 사람은 이제 할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하시는지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된 것입니다.

 

3.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의 시련(21:37-23:22)

 

바울은 체포되어 유대인 앞에서 히브리 방언(21:40)으로 말합니다.

아람어입니다. 21-26장에서 5번의 바울의 자기 변호가 나옵니다.

 

1차 변호, 예루살렘 성전 앞의 군중 앞(22)

2차 변호, 이스라엘 최고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앞(23)

3차 변호, 벨릭스 총독 앞(24)

4차 변호, 베스도 총독 앞(25)

5차 변호, 유대인의 왕 헤롯 아그립바 2세 앞(26)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있습니다.

죄목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합니다.

로마 군인들은 바울을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로마 군인들이 바울을 보호하려는 것은 바울이 유대인 군중들에게 죽임을 당하면 죽인 자를 찾아야 하고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이 매맞고 가죽 줄로 묶어지니 그때 로마시민이라고 했습니다(22:25).

로마시민은 재판 받지 않고 정죄 당하지 않으며 매를 맞지도 않습니다.

천부장은 돈을 주고 로마시민이 되었다고 했고,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라고 합니다(22:28).

 

로마 군인들의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겠다는 결사대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40명입니다(23:13).

이러한 때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겠다고 소란을 피운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로마에서도 증언하리라이것은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후, 바울은 2년후에 로마에 가게 됩니다.

 

4.   가이사랴로 호송( 23:23-35)

 

바울은 로마군인의 호위 속에 가이사랴로 이송됩니다.

가이사랴에 로마군대와 로마총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23-24,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3, 9시에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보병 200명과 마병 70, 창군 200명 등 470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이 규모는 예루살렘에 주둔한 로마군의 거의 절반에 해당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라는 96km 정도됩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미결수로 구류됩니다.

 

 

5.   바울의 총독 재판과 변호( 24-26)

 

24-26장에 정치인 3(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이 등장합니다.

24장 벨릭스, 25장 베스도, 26장 아그립바 앞 에서 자기 변호를 합니다.

이 세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벨릭스 총독입니다.

 

벨릭스와 그의 형 팔라스는 로마 클라디우스 황제의 어머니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들은 교활한 수단에 의해 자유인이 됩니다.

형인 팔라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친하게 됩니다.

클라디우스 황제에게 나쁜 놀이를 소개하는 뚜쟁이가 되어 총애 받습니다.

벨릭스는 이런 형의 도움으로 유대 총독이 된 것입니다.

 

벨릭스의 아내는 두루실라입니다. 이 여자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고, 헤롯 아그립바 2세가 오빠입니다.

두루실라는 역사가에 의하면 로마에서 가장 미인이라고 합니다.

18세때 벨릭스와 결혼했으며, 당시 벨릭스의 나이는 60세입니다.

 

 

이 여자는 16세때 시리아 북단의 작은 왕국 에메사의 왕 아지주스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이혼합니다.

벨릭스는 두루실라가 그의 남편을 버리고 자기와 결혼하게 했습니다.

벨릭스는 두루실라가 3번째 부인입니다.

 

24: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벨릭스는 자신이 업으로 하던 돈 받는 것에 다시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돈이 없는 사람입니다.

천막을 지어서 생계를 스스로 유지하면서 전도여행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에게 돈을 받으려고 했을까요?

바울이 소아시아 교회에서 모금한 구제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24: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벨릭스는 바울과 2년을 지냈습니다.

벨릭스는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고,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의 형 팔라스가 중재하지 않았다면 벨릭스는 사형을 당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베스도 총독입니다.

 

베스도는 주후 60년에 벨릭스의 후임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입니다.

베스도의 유대 총독 재임 기간은 대략 3(주후 59-60)입니다.

그는 선임 총독보다 유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마 시민은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호소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소송을 로마 최고 법정에서 심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베스도에게 재판을 받으면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를 하였고, 베스도는 그렇게 하겠다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유대 분봉왕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를 방문하였습니다.

 

셋째, 아그립바왕 입니다.

본문의 왕은 헤롯 아그립바 2세로서 헤롯 대왕의 증손자입니다.

예수님 탄생시 왕이 헤롯 대왕입니다.

 

헤롯 왕조는 약 100년간 통치했으며 아그립바 2세는 헤롯 왕조의 마지막 왕이며, 팔레스틴의 북동쪽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니고 성전의 보물을 좌지우지했으며, 대제사장의 임명과 해임을 마음대로 주물렀습니다.

 

헤롯 가문이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한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헤롯 대왕의 부친이 안티피터인데, 이 사람이 주전 47년에 줄리어스 시저를 섬긴 대제사장 힐키누스와 관련이 되어 유대 총독이 됩니다.

안티피터는 시저가 암살 당한 이듬해인 주전 43년에 살해되었습니다.

헤롯은 로마에 가서 옥타비우스와 안토니우스의 지지를 얻어내고 팔레스타인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아들이 4 이었으며, 모두 복음서에 나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헤롯이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들입니다.

-      첫째, 헤롯 아켈레오( 2:22) :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의 영주.

-      둘째, 헤롯 안티파스( 6:14-29, 3:1, 13:341-33, 23:7-12) : 세례 요한을 처형.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고 불리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재판한 사람.

-      셋째, 헤롯 빌립 1( 14:3, 6:17) :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

-      넷째, 헤롯 빌립 2( 3;10) :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

 

활동한 이 무렵이 주후 60년인데, 이 당시 아그립바 2세는 33살입니다.

아그립바왕과 동행한 버니게는 아주 복잡한 여자입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1세의 딸이고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의 언니입니다.

버니게는 혼인관계가 굉장히 복잡한 사람입니다.

 

몇 번 결혼했다가 헤어지곤 했는데, 친 오빠인 아그립바 2세와 정을 통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6. 로마로 가는 향해( 27)

 

바울은 죄수를 운송하는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됩니다.

로마는 원형경기장을 개방해 놓고 로마제국의 각처에서 오는 죄수들을 이용한 피를 흘리는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검투사 경기입니다.

 

바울이 누가와 디모데 등의 동반자를 대동하고 갔습니다(27:1)

아마도 죄수가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특별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로마 귀족들은 보통 두 명의 종을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27장에서는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행선하던 중 일어난 파선과 모든 사람들의 극적인 구원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터키의 남쪽 해안 항구 도시 무라에서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탑니다.

무라는 로마 제국의 곡물 수송을 위해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곡물은 애굽산이 주요 생산물입니다.

 

당시 로마군인들은 비용 절감차원에서 민간선을 군인 들의 호송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애굽선박(알렉산드리아 배)이 왔는데 식량 수송선입니다(276명을 수송)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기 위해서는 팔레스틴 해안을 따라 가다가 90도 각도로 꺽어서 무라를 거쳐야 했습니다.

 

배는 바람이 심하여 간신히 그레데섬 미항에 도착했습니다(27:7-8).

미항은 오늘날의 리메오나스 칼로우스라는 항구입니다.

미항은 아름다운 도시인데 그레데 섬의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입니다.

그레데 섬 서쪽 끝에 뵈닉스가 있습니다.

 

27장에 보면, 로마 항해 여행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차 전도 여행에서는 항해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했을까요?

바울이 위험을 이유로 항해를 만류했으나 백부장과 선주가 항해를 강행했으며 파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손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슬에 매인 바울이지만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를 통해 놀라운 구원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27: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금식하는 절기는 속죄일입니다.

구약에 유대력으로 7 10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16:29-31).

이 시기를 주후 59 10월 초순으로 봅니다.

지중해 연안은 여름 다음에 가을이 거의 없고 겨울에 들어갑니다.

9 11일 이후에 항해가 위험하고, 1111일 이후에 아예 불가능합니다.

특히 바람의 힘으로 가는 목선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27:11-12,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추운 겨울을 바다에서 보내야 합니다.

문제는 미항에서 보내느냐, 뵈닉스로 가서 보내느냐가 문제입니다.

미항은 좁고 겨울나기가 불편합니다.

뵈닉스는 큰 항구라서 여러가지 편한 시설이 있습니다.

 

바울은 가는 것이 위험하니 미항에서 그냥 머물자고 제안합니다.

상식적인 수준으로 보더라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어자피 로마에 못가고 겨울을 바다에서 나야 하는데, 굳이 위험을 강행하면서 뵈닉스까지 이동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교에서 이러한 판단은 중요합니다.

지도자의 판단이 중요한데, 우선적으로 안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제안을 듣지 않고, 배를 인솔하는 백부장이 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광풍을 만납니다.

 

27: 14-15,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남풍이 순하게 부니 해안선을 따라 갈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섬에서부터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남풍이 과격한 광풍으로 급변하는 일은 지중해 동부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배는 풍랑으로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물속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하나님의 사자의 계시의 말씀을 받고 이를 전합니다.

 

27: 21-22,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아무도 생명에는 손상이 없고 오직 배만 손상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은 위기시 마다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에 세번(18:9-10, 23:11, 27:23-24) 나옵니다.

 

27:23-24,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은 자신이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의 말은 예리하고 강하고 확신에 찬 증언입니다.

 

전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방문했는데, “바울아 안심하라 너는 로마로 가게 될 것이다. 아무것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재난이 구원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이 말씀대로, 항해 인원이 276명인데 이들이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7. 멜리데에서의 기적( 28:1-10)

 

바울이 탄 배가 난파되어 간신히 상륙한 섬이 멜리데입니다.

15일 동안 폭풍에 표류하면서 그레데 미항에서 서쪽으로 온 것입니다.

 

멜리데는 이태리 시실리 남쪽에서 100km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몰타공화국이며, 인구 350,000명입니다.

100% 그리스도인이며, 로마 카톨릭이 97%입니다.

 

매년 2 10일 섬에서 사도 바울의 파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이 나라에 전승에 의하면, 바울로 인해 기독교가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28:1-2,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겨울에 비가 오고 날이 추웠으며,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영접하였습니다.

 

28:3-4,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가지고 불에 넣었습니다.

뱀이 겨울잠에 들어갔는데 나무 묶음을 쌓아 둔 곳에 있게 됩니다.

뱀이 나무에 있다가 불기운이 닿으니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은 것입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헬라 전설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습니다.

 

28:5-6,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바울이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바울이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28:7-8,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이라 함은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렸습니다.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고쳤습니다.

 

기도와 안수를 동시에 한 것은 사도행전에서 여기가 유일합니다.

누가는 의사였으며 열병과 이질이 심각한 병이라는 것을 알고 냉정하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28:9-10,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그곳에서 3달을 머물고(11),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로마로 떠나려 할 때 섬 사람들은 그들이 사용할 것을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

 

8. 로마에 도착( 28:11-31)

 

사도행전 21장부터의 설명은 28자 후반부의 로마입성을 설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바울은 공식적으로는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로마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왔고, 로마에 도착하여 연금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배들은 대개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운항을 재개했습니다.

 

멜리데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 수라구사에서 사흘(12), 레기온에서 하루, 보디올서 7(14)을 머물고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에 가니 그리스도인들이 압비오 거리에 나와 마중했습니다(15).

바울의 로마 입성은 죄수가 아니라 개선장군 같았습니다.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바울이 로마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명의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 받았습니다.

바울이 주후 60 3월에 로마에 도착하였고, 로마 정부는 한 군인을 배치하여 바울이 감옥이 아닌 가택에 연금되었습니다.

 

로마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구약 성경의 메시아 예언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 초점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이 2년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습니다.

셋집이니 임대한 집에서 할일을 하면서 군인이 지키는 연금상태입니다.

2년이란 기간은 황제에게 상소한 사람에 대해 더 이상의 기소가 없을 경우 더 이상 붙잡아 둘수 없도록 로마 법으로 정해진 기간이었습니다.

 

2년 동안 바울이 가택 연금을 당한 것이지만 복음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서신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12-14,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사도행전이 뭔가 할 일을 남겨두고 끝났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끝을 맺고 있는데, 이것은 흔히 볼수 있는 일입니다.

고대의 작품들은 대개 별안간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가택 연금 상태에서 바울은 4개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이른바 옥중서신입니다 -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소서, 빌레몬서

 

 

9. 사도 바울은 언제 죽었을까?

 

사도 행전의 이야기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것을 기점으로 끝납니다.

초대교회의 전통은 바울이 A.D. 64년 네로의 명령에 의한 핍박 때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2년 후에 사형을 받았다는 것인데, 설명이 궁색합니다.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는 바울이 죄가 없다고 한 점으로 보아 황제의 법정에서 유죄로 판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AD 64년에 로마에서 최후 심판을 받고 순교할 때까지 다른 활동을 한 것으로 추측합니다.

 

초대 교회 역사가의 한사람인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1차로 석방된후, 전도 사역을 위해 떠났다가 로마에 더시 왔다가 네로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다

 

바울의 로마에서 2년을 보낸 후의 추가 활동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가능성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려던 의도를 관철했다는 것입니다.

A.D. 95년 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일곱 번이나 감금을 당하고, 쫓겨나고, 돌에 맞았다. 그는 그의 믿음으로 고귀한 명성을 얻었으며, 동부와 서부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온 세계에 의를 가르쳤고 서쪽 끝까지 이른 후에 통치자들 앞에 증거하였으며, 그는 이 세상을 떠나 거룩한 곳으로 이끌림 받았다.”

 

이 기록에서 서쪽 끝은 스페인입니다.

바울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따라 땅끝인 스페인 선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석방된후의 활동을 목회 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딤후 1:8,17절은 바울이 로마에 다시 투옥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딤후 4:6-8에서 바울은 자신의 석방을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죽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없는 그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납니다(딤후 4:13, 20, 1:5).

이런 사실은 바울이 로마에서 석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석방된 후에 소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A.D. 64 7 18일밤에 로마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불은 원형경기장의 나무로 된 계단에서 시작되어 도시로 옮겨졌습니다.

로마의 14개 구역 중에서 2개 구역이 불이 나지 않았는데 이 2개 구역에그리스도인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문은 네로가 자신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네로는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속죄양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그리스도인이 1천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방화범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사자 먹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네로는 68년에 반란으로 죽게 됩니다.

 

A.D. 66년에는 유대 땅에서 로마에 반기를 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상황이 극히 안 좋았습니다.

바울은 A.D. 66년에 체포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옥에서 엄격한 통제를 받았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9절에 보면, 바울이 착고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두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서신서 중에 마지막으로 쓴 디모데 후서입니다.

자신이 더 이상 풀려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피력하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10. 사도행전 29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에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항진을 계속합니다

독일의 게르만 민족으로 복음이 옮겨갔습니다.

영국의 앵글로색슨 족에게, 그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왔습니다.

이제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로 갑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중국으로 동남아시아, 인도로 보내야 합니다.

21세기의 사도바울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해야 합니다.

 

As within so without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하면 된다 고 외칩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되면 한다 고 외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주님이 이순간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할수 있다! 하면 된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신 말씀 감사 드립니다.

사도바울의 로마 전도를 공부했습니다.

주님은 로마 전도를 위해 사도 바울이 안전하게 갈수 있는 죄수의 신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주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청년들이 중국선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서진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 본 적도 없고, 작고 미약하여 부족합니다.

할 수 있다라는 주의 힘에 의지하여 진행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준비하는 과정과 출발부터 도착때까지 함께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한마음의 멜로디
글쓴이 : Only Yo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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