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당: <히 바마(הםב)는 문자적으로 ‘높은 장소’라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그곳에 존재해있었습니다.(민2:41) 따라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이 산당을 헐도록 명하셨으나(민33:52) 후에도 산당을 계속 존재하였다.
한편 기브온 산당에는 하나님의 성막과 번제단이 있었습니다.(대상16:39,21:29,대하1:3) 또한 선지자 사무엘, 사울 등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으며(삼상9:12,25, 10:5,13) 솔로몬왕은 성전건축 이전에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려 커다란 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왕상3:2-15) 그러나 이 산당은 성전건축 후에도 계속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습니다.(왕상14:23,왕하16:4, 17:22,대하28:25)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고 의로운 왕이 일어나 종교개혁을 일으키나, 산당을 없애지는 못합니다.(왕상15:9-15, 22:43, 왕하14:3-4, 15:3-4) 그런데 히스기야와 요시아 왕은 담대히 산당을 제하여 버렀습니다.(왕하18:3-6,왕하23:4-5,20)
2. 놀라운 점은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던 산당을 제거해 버렸는데도, 산당을 제거해 버린 일에 대하여 비난이 있었습니다.(왕하18:22, 사36:7)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왕하18:22)여기 이 말씀 속에 산당을 왜 제하지 못하였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산당을 헐어 버린 것을 비난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보낸 장군 랍사게의 말입니다. 이 비난은 히스기야왕과 궁내 대신들(백성들)사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말입니다. 여기 랍사게의 비난을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당을 제거해 버린 것과 예루살렘 이단 앞에서만 숭배하게 하였다’고 한 말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멈추고 신명기 12장 1-8절을 봅시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정착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드릴 예배원칙을 가르쳐준 말씀입니다.
(신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가서....”라고 하였고(신12:8) “우리가 여기 오늘날 여기서는 각각 소견대로 행하였거니와 거기서는 말찌니라”라고 하였습니다.이는 곧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서 예배하여야 하며, 그 이유는 각기 소견대로 행치 않게 하고, 일치한 생활 기준을 같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단일 중앙 성소의 의미
단일 중앙 성소의 개념은 모세의 성막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세에게 명하신 성막은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이요(출25:8-22), 그리고 성막을 중심하여 생활 하였습니다.(출40:34-37)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생기기전까지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정착 이후 각 지파를 따라 땅을 분배받아 살아가면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목민으로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생활하여 강인한 몸을 가졌으나, 한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문화생활을 누려보지 못함으로 가나안의 남은 원주민들로부터 농사법과 문화를 배우면서 자연 종교적으로도 물들어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산당에서 각기 자신들의 신(人本主義)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앙 성소에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여호와 단일신을 섬기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신앙을 유지하고 정치적으로 하나로 묵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명기 16장1-17절에 보면 삼대(三大)절기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라고 무려 61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이 말씀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은 절기만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이런 풍속이 예수님 때까지 계속되어 예수님께서도 12살 되던 해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잃어버리는 소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성전 중심의 생활은 히브리인 특유의 신본주의 문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4. 본문으로 돌아가서 히스기야 산당제사를 폐지하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 드리도록 한 것은 하나님 중심한 공동체를 이룩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려는 개혁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방에 산재한 산당제사를 폐하고 중앙 성소 중심으로 모이게 되면, 관리들 지방토후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랍사게는 이와 같은 기득권을 포기해야하는 관료들과 히스기야 왕과 사이를 이간질한 것입니다.따라서 아사왕이나(왕상15:!4, 여호사밧왕이나(왕상22:43) 아사랴왕이(왕하15:4)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산당을 폐하지 못했다는 것은 기득권 세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입니다.
문한배 목사(성결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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