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하면서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적'(敵)을 만나게 된다.
즉,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이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블레셋은 '외부의 적'( the enemy )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상적 신앙관이나 인본주의적 신앙관을 보면, 이는 바로 '내부의 적'( fighting against God )에 해당하는 것이다.
삼상 4: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지 하니" 라는 말씀은
삼상 2:30절의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의 하나님 의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표적인 '우상적 신앙'의 표출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뜻을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인본주의 신앙'이다.
삼상 4:4절에서 장로들의 요구와 지시에 따라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를 보면,
하나님 뜻보다는 인간들의 생각이나 주장을 더 중시하는 행태를 엿볼 수 있다.
인본주의는 비진리이고 불신앙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심판의 대상이 된다.
삼상 2:25절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이는 삼상 4장에서 이스라엘이 적군 블레셋에게 패망하게 된 것은 블레셋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충돌하는 왜곡되고 잘못 해석된 그들의 신앙관에 의한 대패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구원의 주체는 누구인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서만 이루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수단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구약시대에는 '사사'였다.
즉, 사사 시대에 12명의 사사를 거치면서 '전투'를 통해 하나님은 백성들을 사사를 세워 구원해 가신다.
이것이 신약(새 언약 시대)에 와서는 '교리'가 통치의 핵심적 수단이 된다.
즉, 현대 교회안에서 '교리'를 통한 '바른 가르침'이 약화하거나 생략된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대적행위'(fighting against God)이다.
사사 시대에는 사사가 죽으면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다.(삿4:1)
즉, 통치 수단이 사라지면 각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였다.(삿21:25)
현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통치 수단인 '교리'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만 인정하는)(마7:15, 21~23),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시고,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 되게 하시고, 그가 바로 그리스도 되심을 부활을 통해 증명하신
하나님의 이 모든 계획과 진행하심을 성경 그대로 바르게 가르침이 바로 '바른 복음'이다.
이 복음을 갈1장 6절에서는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바울을 비롯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등의 사도들과 바나바, 실라 등의 사도들과 동역한 동역자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받은
'바른 복음'의 전수자들이 모두 이 "우리"(갈1:8)에 해당하는 바른 복음의 증거자들이다.
이들을 통하여 전해진 복음만이 바로 생명이 보장되는 '바른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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