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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지평선

[스크랩] 입다의 딸이 <성전 봉사>로 드려졌는가? <번제의 제물>로 드려졌는가?

by 낮은곳에 서서 2012. 3. 14.

 

☞ 중심 말씀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1).

 

1. '입다'(Jepthah)의 성장 환경

 

1)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다(삿11:1).

 

2) 본처의 아들에게 쫓겨 돕 땅에서 이방인들과 살았다.(삿11:1-3).

 

3) 돕(Tob)은 바산의 남, 길르앗 동에 있는 한 지방으로 이방신을 섬기는 지역이었다(삿11:2;삼하10:6,13,14).

 

4) 입다는 돕 지방의 잡류들과 어울려 생활하였다(삿11:3)

 

 

2. 입다가 '사사'가 된 배경

 

1)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 대신 바알, 아스다롯과 아람, 시돈, 모압, 암몬,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겼다(삿10:6).

 

2)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징계로서 암몬 족속의 압제를 받게 되었다(B.C.1103년).

 

3) 이스라엘은 암몬 족속으로부터 18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삿10:8,9).

 

4) 이에 이스라엘 민족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였다(삿10:10-16).

 

5) 이스라엘 민족은 입다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으로 믿고 사사로 세웠다(삿10:18,11:5-11).

 

6) 입다는 장로들로부터 사사로 세워진 약속을 하나님께 고하였다(삿11:11).

 

7) 입다는 여호와의 신(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체험하였다(삿11:29).

 

이것은 입다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이란 증거였다.

 

 

3. '서원'의 의미

 

서원(誓願, vows)이란 요구되어 있지 않는 것을, 자발적으로, 엄숙하게 하나님께 하는 서약(신23:22). 한번 서원한 때에는, 절대로

 

깨뜨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민30:2-;신23:21-23;삿11:35;마5:33). 서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받은 은혜에 감사함이다(야곱,창28:20-22; 입다,삼상11:30-40;한나,삼상1:11-;압살롬,삼하15:7,8;

 

사울,삼상14:24;우리아,삼하11:11;기타,시22:25,76:11,132:2-5).

 

둘째,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약속이다(나실인의 서원,민6:2,21;바울,행18:18;네 사람,행21:23-2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서원하지

 

말라고 하셨다(마5:34-36).서원을 지키지 못하여 취소하려면 그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레27:1-34). 다만 여자의 경우 서원을

 

들은 부친 또는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에 서원의 의무를 취소케 할 수가 있다(민30:1-16).

 

 

4. 입다가 '서원'한 배경

 

입다의 신앙이 돕 지방에서 잡류들과 어울려 생활 하는 중에 이방인의 신앙에 오염되었다고 본다.

 

 

몰렉(Molech)은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으로 몰렉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보통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 제사가 행해졌다(렘32:3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몰렉 신에게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가증한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레18:21).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몰렉 숭배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레20:1-5). 하지만 이미 그들이 들어

 

갈 가나안 땅에는 어린아이를 인신 제사 제물로 바치는 몰렉 숭배가 퍼져 있었다(신12:31,18: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몰렉 제사를 계속하였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 사당에서 인신 제사를 드렸으며(렘7:31),

 

유다 왕 아하스(왕하16:3;대하28:3), 이스라엘 왕 호세아(왕하17:17), 유다 왕 므낫세(왕하21:6;대하33:6)도

 

인신 제사를 드렸다. 그만큼 이방인의 신앙에 오염된 것이다

.

이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강대한 암몬과의 전쟁에서 꼭 이기고 싶다는 열망에, 꼭 이기게 해달라는 염원으로,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삿11:30)이라는 조건으로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5. 입다의 '서원'의 분석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11:31).

 

 

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 서원하였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사로 세우셨으면 자신의

 

능력이 있던 없던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입다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성령이 힘을 주셨고 자기

 

안에 성령의 감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삿10:29) 입다는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 전쟁에서

 

혹시라도 이겨서 살아 귀가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기꺼이 한 사람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 '누구든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사람을 염두에 둔 말이다.

 

(2) '내 집 문에서 나와서'라고 한 것은 자기 집 식구나 자기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3) '나를 영접하는 그는'에서 '그는'은 짐승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며, 맨 처음 영접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3)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1)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레27:26)라는 말은 '여호와의 것'(레27:26)으로 '여호와께 아주 바친 것'(레27:28,29)이란 의미이다.

 

여기서 '아주 바친'은 히브리어 '헤렘'(herem))으로 '진멸하라'로 '호흡하는 모든 것은 완전히 죽이는 것을 말한다

 

(신20.16;7.25,26).

 

 

4)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번제'(Burnt offerings)는 히브리어 '알라'에서 유래한 '올라'로 '제물을 모두 태워버리는 것'을 말하며, '제물이 태워져서

 

그 제물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를 번제로 드려라"(창22:2)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했으니'(창22:10) 여기서 '번제'는 '인신제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삿11:31)라는 입다의 서원에서 '번제'도 이와 동일한 쓰임이다.

참고로 '번제의 의미'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과 경의와 감사에 있다(시4:5). 그리고 구약에서의 번제는 신약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요4:23,24) 영적 예배(롬12:1)의 모형(히9:23,24,10:1)이다.

 

6. 입다의 딸이 '성전 봉사'로 드려졌다는 견해에 대한 반론

 

1) 입다는 신중한 인물로(삿11:7-11) 출애굽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삿11:14-27), 하나님이 사람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는 일에 대해서 가증스럽다고 하셨음(신12:31;레18:21,20;2)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 입다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서원을 하였을 리가 없다.

따라서 여기 이른 '번제'는 바쳐 올리우는 제물(ascending offering)을 의미한 것이다.

< 반론 1 >입다가 분명히 사람을(위 5-2)항 참조) "번제로 드리겠나이다"(삿11:31)하고 여호와께 서원을 했다. 

'올라'(삿1:31)를 '번제'(개역한글, 개역개정, 바른성경, 공동번역), '번제물'(표준새번역),burnt offering(번제, NIV, NASB, KJV)로 모든 성경이 표현하고 있다. 입다의 딸이 '성전 봉사'(나실인)로 드려졌다면 히브리어 '올라'를 수많은 번역참여자들이 왜 한결같이 '번제'로 번역했을 까닭이 없다.

실재로 성경에 '나실인'으로 드려진 경우에는,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1:28),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민6:2),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삿13:5,7) 등으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2) 당시 암몬 족속이 몰록 우상(밀곰, 왕상11:5,33)을 섬겼는데(왕상11:7), 저희 자녀를 불살라 그 우상에게 바치는 악한 미신(迷信)에 젖어 있었다. 그 때에 입다가  암몬을 대적하면서 그런 미신도 미워하였을 것은 물론이다. 그런 입다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서원을 하였을 리가 없다.

< 반론 2 >입다는 인신 제사가 성행하던 이방인의 지역 '돕'에서 살았다(삿11:3).

따라서 그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인신 제사는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몰렉에게 인신 제사를 하였다(렘7:31). 이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강대한 암몬과의 전쟁에서 꼭 이기고 싶다는 열망에, 꼭 이기게 해달라는 염원으로,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삿11:30)이라는 조건으로 하나님께 서원하였다. 승리하고 싶은 다급한 마음과(삿11:30)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심의 표현으로 서원을 했다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3) 번제에 있어서 짐승은 반드시 '수컷'이 사용되었다(레22:18,19). 입다가 그것을 무시하고 딸을 번제로 바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영접하는 것(whatever)이 짐승이면 번제가 될 것이며, 사람이면 성전 봉사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되어진다.

< 반론 3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은 분명히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누구든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사람을 염두에 둔 말이며, '내 집 문에서 나와서'라고 한 것은 자기 집 식구나 자기 집에서 함께 기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더구나 '나를 영접하는 그는'에서 '그는'은 짐승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며, 맨 처음 영접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영접하는 것(whatever)이 짐승이면 번제가 될 것이며, 사람이면 성전 봉사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되어진다.>는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 그런 이중적인 표현을 성경 어디에서도 그 예로 찾을 수가 없는 접근이다.

 

4) 히브리어 원어는 그녀가 '죽음'이나 '죽는다'는 단어는 없고, .'처녀로 인하여'라는 단어만 언급된다. 

[삿11:37] (개역)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원문) "알 부툴리"(for my virginity) 

[삿11:38] (개역)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원문) "알 부툴리"(for my virginity) 

[삿11:39] (개역)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원문) "알 야데아 이쉬"(did not know a man)

이러한 원문의 의미를 근거로 해서 입다의 딸이 죽지 않고 서원에 의해 성전에 드려져서 일평생 처녀로 성전에서 수종드는 사람이 되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 반론 4 > "번제로 드리겠나이다"(삿11:31)라는 말이 죽임을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올라)로 드리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명을 좆아서 평상시에 짐승을 드리던 대로 아들 이삭을 나무 제단 위에 묶고 칼을 들어서 그를 잡으려고 했다(창22:9,10). 즉 '번제'는 일차적으로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처녀로 죽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5)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의 가증한 짓으로 여기시는 분이다(신12:30,31). 그러하신 하나님이 입다가 서원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서원 자체가 틀린것이므로 입다의 딸을 번제물로 드리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그리고 입다의 딸은 아무 죄도 없었다.

< 반론 5 >하나님의 뜻을 간과한 인간적인 접근이다.

율법에서 딸의 서원을 아버지 입다가 취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서원을 딸이 취소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인신 제사에 대하여 극도로 싫어하신다(레18:21,20:1-5). 그런데 침묵하셨다. 그것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죄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전쟁의 승리한 입다와 이스라엘에게 애통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길르앗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으로도 부족해 시돈과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의 신까지 끌어와 섬기고 있었다. 입다의 서원을 막지 않은 것은 길르앗 사람들이 암몬으로부터 승리하도록 하셨지만 죄의 문제(우상숭배와 입다의 불신앙 서원)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기뻐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이며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죄를 보게 하신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몰렉 제사를 계속하였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 사당에서 인신 제사를 드렸으며(렘7:31) 유다 왕 아하스(왕하16:3;대하28:3), 이스라엘 왕 호세아(왕하17:17),유다 왕 므낫세(왕하21:6;대하33:6)도 인신 제사를 드렸다.

한때 요시야 왕은 몰렉 제사를 금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인신 제사인 몰렉 숭배가 철저히 근절되지는 못했다(왕하23:10).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인신 제사가 드려졌던 것이다.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몰렉 숭배 등 우상 숭배의 죄를 지적했다(렘32:35;49:1,3;겔16:20;20:26,31;23:37;습1:5).결국 이러한 가증한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왕하17:18).

 

6) 입다는 그 후에도 이스라엘의 사사(士師)로서 6년 간이나 역사하고 죽었다(삿12:7).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이 입다를 신앙 인물로 칭찬하고 있다(히11:32).  

< 반론 6 > 신약성경이 입다를 신앙 인물로 드러낸 것은, 믿음으로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친 사례(히11:32-34)이지 번제에 대한 정당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7)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신명기 24장 16절의 말씀과도 위배가 된다.

< 반론 7 > 신명기 24장16절 말씀은 당시의 관습에 따른 연좌제(수7:24-25)를 금지하여 죄의 책임 소재지를 밝힌 율법이다(관련->왕하14:6;겔18:1-4). 법에는 상위법이 있고 하위법이 있다. 서원은 하나님께 직접 맹세한 것으로 죄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법보다 상위법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한 서원은 여자와 아이의 경우(민30:1-16)를 제외하고는 깨뜨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레27:28,29민30:2-;신23:21-23;삿11:35;시15:4;전5:4;마5:33). 따라서 입다의 딸의 죽음과 신명기의 말씀은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7.  입다의 딸이 '성전 봉사'로 드려졌다는 견해에 대한 질문

1) 성전 봉사에 바쳐지는 것이라면 그 시대에 기쁨이고 은혜인데(민6;2;삿13;5;삼상1;22), 입다가 '참담하다', '괴롭다'하면서 옷을 찢으며 후회한다는 것(삿11:35)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입다 자신의 서원의 결과로 무남독녀의 딸이 죽게 되어 자신의 기업이 끊기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사사인 입다가 자기 옷을 찢으며 '나를 참담케 하는 자요 괴롭게 하는 자'(삿11:35)라고 하였다. 나실인으로 평생 헌신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갚음으로 생각하는 시대(삼상1:11)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절망적인 표현(또는 회개)인 옷을 찢었을까? 그러면서 '참담케 하는 자'라고 하였다. 참담(慘憺, miserable, sorrow)이란 괴롭고 슬픔(삿11:35;시143:4)이란 뜻이다.

나실인이 되는 것이 사사로서 그렇게 괴롭고 슬픈 일로 받아들여야 할까?

2) 입다의 딸이 두 달 동안 그 동무들과 산에 가서 애곡하였다(삿11:37-39).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여호와께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 헌신하는 것이 본인뿐 만아니라 동무들에게 두 달 동안이나 산에 가서 애곡할 만한 슬픈 일이었을까?

3) 입다의 딸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마다 산에 가서 나흘씩 애곡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규례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실인이 되는 슬픔이 이스라엘의 규례가 될 정도로 슬픈 일일까? 그렇다면 삼손, 사무엘, 세례 요한을 위하여 애곡하는 규례나 기록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4) '애곡'(삿11:37,38)이 슬픔을 전제한 울음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여러 번역본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① (삿11:37) 애곡 하겠나이다(개역한글, 개역개정),실컷 울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표준새번역),실컷 울겠습니다(바른성경), 실컷 울어 한이나 풀겠습니다(공동번역), weep(울다, NIV, NASB), bewail(슬퍼하다, KJV).

② (삿11:38) 애곡하고(개역한글, 개역개정), 슬피울었다(바른성경), 실컷 울었다(표준새번역). 실컷 울었다(공동번역), wept(울었다, NIV, NASB). bewailed(슬퍼하였다, KJV).

③ (삿11:40) 애곡하더라(개역한글, 개역개정), 애도하였다(바른 성경), 슬피 우는 것이다(표준새번역), 애곡하게 된 것이다(공동번역), commemorate(기념하다, NIV, NASB) lament(슬퍼하다, KJV),

전체를 종합하면 슬픔이 전제된 울음이 아닐까?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사랑나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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