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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토론광장

[스크랩] 기 념 설

by 낮은곳에 서서 2013. 1. 3.

기 념 설

성찬 성례전을 하나의 기념으로 단순화시키는 교리는 츠빙글리의 학설로 개혁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신비한 성례전으로서 사제들만 참여해 온 성찬 성례전을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과 함께 신비한 요소들을 제거해 버리는 이 교리는 대다수의 성도들에게 부담 없는 성례전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기념설은 성찬 성례전의 해석을 철저히 고린도전서 11장에 근거하고 있다. 이 주장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 이상의 의미 부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츠빙글리는 그의 최종적인 신학적 견해를 다음과 같이 신앙 고백서에서 말하고 있다. 첫째, 성찬 성례전은 죄의 대속물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한다. 둘째, 성도들의 구속 신앙을 견고케 한다. 셋째,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케 한다. 넷째, 순종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구체적 표현은 그가 죽기 1년 전(1530) 황제 찰스 5세에게 보낸 신앙 고백서에서 밝혔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금껏 개혁자들의 지대한 관심이었던 성찬 성례전 현장의 성물에 그리스도께써 어떻게 임재하시는지에 대한 문제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겼었다. 그러므로 그는 성찬 성례전을 단지 기념적 행위로 그리스도의 희생의 기념과 신앙 공동체 의식의 근거로써 단순화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츠빙글리는 성찬 성례전을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지 않고 기념적 행사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예수님이 "나를 기념하라."고 하시면서 사용한 '아남네시스_Anamnesis'라는 말은 단순한 기념보다는 재현(representation) 또는 회상의 의미가 뚜렷한데도 이러한 뜻은 거의 활용되지 못한 채 오직 기념의 뜻만을 강조하여 그의 개혁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루터가 말씀의 예배와 성찬 성례전 예배가 언제나 예배 가운데 병존하도록 했던 개혁에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개혁은 예배의 두 축을 보완하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껏 예배의 핵심으로 지속해 온 성찬 성례전을 1년에 4회로 제한시키고 설교를 그 자리에 있게 하는 불완전한 예배의 개혁을 가져 왔었다. 이러한 개혁은 초대 교회 예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개혁이 아닌 새로운 예배의 형태를 출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보완되지 못한 예배의 개혁이 오늘의 개혁 교회 예배의 전통이 되어 버린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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