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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지평선

[스크랩] 예수님의 생애의 연대

by 낮은곳에 서서 2012. 3. 17.

예수님의 생애의 연대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가족 배경, 청소년기,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거의 전적으로 3년 간의 예수님의 사역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 3년의 시간을 완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야로 오셨음을 선포하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의 인격과 그 가르침에 관심이 집중되며 메시야의 대망의 핵심을 이루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 약 50일 가량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생애는 BC1년부터 AD 33년 까지로 추정되었다.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BC 약 5-6년으로 계산하고 있다. 예수님이 죽임을 당한 연대에 대해서는 AD 27-33년까지 걸쳐 있다. 아마 AD30년 유월절 기간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신약성경의 지리적 배경

 

 

팔레스틴은 강대국의 요충지다. 팔레스틴 땅은 지구 대륙의 딱 한가운데로, 아프리카로 내려가려면 그곳을 거쳐야 하고 유럽으로 올라갈래도 이 땅을 거쳐야 하며, 동쪽으로 가더라도 이곳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 문화가 서쪽으로는 바벨론 문화, 이집트 문화, 동쪽으로 인도문화, 중국 황하 문화인데, 이 문화의 중심지에 팔레스틴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루고 있으므로 그 지리적인 무대는 팔레스타인 내부에 국한된다. 예수님은 태어나자 마자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갔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해외여행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사후 초대교회를 통해 복음이 그렇게 빠르게 확산되어 간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의 유대인은 250만 명이었고, 특히 많은 유대인이 흩어져 살았는데 이런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약 310만 명 정도나 되었다(로마 인구의 7%에 해당함). 예수님의 복음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아주 중요한 계기는 바로 이렇게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갈릴리 지방:
 

갈릴리 호수 주변의 산지 지역으로, 산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높은 갈릴리와 낮은 갈릴리로 나눌 수 있다. 이곳은 주님 오시기 전 거의 800년을 이방 땅에 속하면서 이방인들과 섞여 살았다.

 

그래서 자연적인 혜택이 풍부한 만큼이나 이방의 문화가 풍부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곳이 주님의 성장지였고(나사렛), 주요 선교의 무대(가버나움)였다.

 

나사렛: 예수님의 성장지, 농업중심, 갈릴리 호수 남서쪽(31km 지점) 위치
가버나움: 예수님 사역의 본거지(마4:13)
 

사마리아 지방:
 

팔레스타인 중부지방으로 갈릴리와는 이스르엘 평원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며, 유대와는 아얄론 골짜기와 여리고를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사마리아는 에브라임 산지라는 고지가 대부분으로, 족장시대 및 사사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으나 왕국이 분열되면서, 그리고 포로 후 성전을 건축할 때 유다와 갈등을 겪으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발전시켜 왔다.

 

결국 이것이 유대인과 영원히 결합할 수 없는 원인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보다는 갈릴리를 오히려 더 가깝게 생각하였다.

 

사마리아성: 북이스라엘의수도, 사마리아 산 위에 있는 도시
수가성(세겜): 사마리아 남동쪽 아래 위치, 야곱의 우물이 있던 곳
 

유대지방:
 

유대 산지를 중심으로 한 지방으로 지중해와 사해 사이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네게브 사막으로 경계를 삼고 있다. 족장시대 이후로 헤브론이 이 지역의 중심이었으나 다윗 이후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쪽 8km 지점에 있다.

 

예루살렘(뜻: 평화의 터전) 
 

예루살렘은 고대 가나안 사람의 수도였으나 BC 1000년 경 다윗왕이 점령하였다. 아모스와 호세아를 제외한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무대였으며 구약성경 대부분이 여기서 기록되었다. BC586년 느부갓네살이 점령하였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다시 재건하였다.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 승천의 무대였고 예수님 승천 후에는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베들레헴
 

베들레헴은 집이란 뜻의 “벧트”와 떡이란 뜻의 “레헴”이 합해져서 “떡집”이란 뜻이다.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해발 777m 의 산악지애에 동굴이 벌집처럼 많은 석회암 언덕의 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다. 베들레헴은 유다 땅 조그마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곳으로,  빼놓을 수 없는 성지 중의 한 곳이 되었다.

 

베다니
 

예루살렘 동쪽 약 4km 지점,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가 살던 동네로 나사로를 살리신 곳(요11:1),

여리고 남동 11km 지점으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1:28), 요한이 세례준 곳(요3:23)

 

여리고
 

요단 골짜기 남단에 있던 큰 도시로, 구약시대의 여리고와 신약시대의 여리고가 있다.

<신약의 여리고는 구약의 여리고보다 남쪽에 위치함>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읍으로, 예수님은 이곳에서 소경을 눈뜨게 하고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였다.

 

 

요단 동편지방:
 

이 지역은 북쪽으로부터 야르묵, 얍복, 아르논이라는 세 강에 의해 나뉘어진다.

첫째는 헐몬산에서 야르묵 강까지로, 검고 기름진 현무암 퇴적토양으로 바산의 암소가 여기에 살고 있다. 둘째는 야르묵 강에서 얍복강 사이로 산림이 우거진 산악지대이며 셋째는 얍복강에서 아르논강 사이로 붉은 고원지대, 즉 황무지이다.

 

이 지역에는 정복시대로부터 이스라엘 두 지파 반이 살았고 길르앗이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이 지역으로 다니셨고 베뢰아가 예수님 당시의 이 곳 지명이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요단강 건너편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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