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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5-04-06(월), 예수님을 다시 모셔 들이십시오 (계 3:14~22)

by 낮은곳에 서서 2015. 4. 13.

2015-04-06() 새벽 설교

7. 예수님을 다시 모셔 들이십시오

요한계시록 3:14~22 (찬송 438/495)

 

 

예수님을 믿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볼 때 물질의 풍요로움인 것 같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 네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모두 받았고 두 교회는 칭찬만 받았는데 오직 한 교회,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았습니다. 이것으로만 평가한다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신약 시대의 최악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물질의 풍요로움입니다.

다른 교회들은 사랑이 메마른 문제, 이단의 문제, 종교 혼합주의나 신비주의 문제 등이 있었지만 그 속에는 믿음을 잘 지킨 성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외 없이 물질주의에 빠져서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이런 저런 면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오늘날 한국교회와 가장 비슷한 교회를 꼽는다면 바로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박해를 당하고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1960년대의 예배는 절반이 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찬송하며 울고 기도하며 울고 설교를 들으며 울고 헌금할 때는 드릴 것이 없어 울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한국교회는 그 순교의 피와 눈물의 예배와 간절한 기도 위에 70년대와 80년대에 급속도로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시기를 같이하여 우리나라 경제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드디어 우리나라는 배고픔을 벗어나자 교회는 부흥을 멈추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숫자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성도들도 옛날처럼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며 헌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는 기복주의 신앙도 교회 부흥이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복주의는 우리나라의 전통종교인 무교(巫敎)와 서로 잘 맞았습니다. 그러나 기복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물질이 풍요로워지자 더 이상 믿음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한번 기복주의에 오염된 교회는 말씀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세속으로 달아나고 있습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금융이 발달하고 부자가 많았고 의학이 발달하여 '브루기안'이라는 안약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들의 물질적인 풍요는 영적 빈곤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의학의 발달과 안약 개발은 영안(靈眼)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역시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16:13).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요일 2:15).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우리가 전도할 때 종종 <3:20>로 불신자를 초대하지만 원래 이 말씀은 세상에 빠져 예수님을 추방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은 한국교회를 항해서도 같은 심정으로 문을 두드리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지금 한국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처방은 라오디게아교회와 똑같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이란 고난을 통과한 타협하지 않은 믿음을 말합니다. 힌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은 우상숭배와 음행에 동참하지 않은 순결한 성도가 되라는 말입니다.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는 말은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바로 깨닫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서 물질과 세상 사랑을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다시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출처 : 행복한교회 (최광희목사)
글쓴이 : 최광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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