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4_예수님을 다시 모셔 들이십시오 (계 3:14~22)
2013-10-18(금) 새벽기도회 설교 (찬송 438/495)
예수님을 믿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성도가 가장 조심해야 되는 것이겠지요.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볼 때 물질의 풍요로움인 것 같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 4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받았고 두 교회는 칭찬만 받았는데 오직 라오디게아교회는 책망만 받았고 칭찬이 없습니다. 이 면으로만 평가한다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신약 시대의 최악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물질의 풍요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여러 교회들은 사랑이 메마른 문제, 이단의 침투 문제, 종교 혼합주의나 신비주의 문제 등이 있어 많은 성도가 거기에 빠져들었지만 그 속에는 믿음을 잘 지킨 성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외 없이 물질주의에 함몰되어서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곱 교회는 이런 저런 면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발견하며 교훈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오늘날 한국교회와 가장 비슷한 교회를 꼽으라면 저는 라오디게아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통치와 육이오 전쟁을 겪으면서 엄청난 박해를 당하고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60년대에 출생한 저는 경험이 없지만 그 당시에 신앙생활을 하던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60년대의 예배는 절반이 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찬송하며 울고 기도하며 울고 설교를 들으며 울고 헌금하며 드릴 것이 없어 울고 그러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한국교회는 그 순교의 피와 눈물의 예배와 간절한 기도 위에 70년대와 80년대에 급속도로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시기를 같이하여 우리나라 경제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에 신학대학에 다닌 저도 늘 배가 고파서 물을 마시고 견뎠지만 90년대 이후에 우리나라는 배고픔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배고픔에서 벗어나던 그 시기에 교회는 부흥을 멈추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소위 마이너스 성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성도들도 그 옛날같이 오직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며 헌신하지 않습니다. 70년대 부모님들은 큰 교회 뒷자리에 머물지 않고 작은 교회에서 헌신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요즘 성도들은 어차피 신앙생활을 하는데 기왕이면 큰 교회에 가서 혜택을 누리겠다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습니다.
한때 기복주의 신앙이 교회 부흥이 이바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종교는 무교(巫敎)인데 무교적 사상과 기복주의는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복주의는 물질이 풍요로운 지금 더 이상 신앙생활이 필요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번 기복주의에 오염된 교회는 아무리 말씀으로 씻어내어도 옳은 신앙으로 돌아오기가 어렵습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금융이 발달하고 부자가 많았습니다. 또 의학이 발달하고 '브루기안'이라는 안약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의 물질적인 풍요는 영적 빈곤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의 의학의 발달과 안약 개발은 영안(靈眼)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역시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눅 16:13).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 속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요일 2:15).
우리가 전도할 때 자주 인용하는 <계 3:20>은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물질과 세상에 빠져 예수님을 추방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 한국교회를 항해서도 같은 심정으로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지금 한국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처방은 라오디게아교회와 똑같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이란 고난을 통과한 타협하지 않은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힌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은 우상숭배와 음행에 동참하지 않은 성결한 성도가 되라는 말입니다.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는 말은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서 물질과 세상 사랑을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다시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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