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아프다]
스마트폰·음식·성적…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도 좌절한다
경향신문|
ㆍ형석·영주·기석이의 불행
형석이(17·가명)는 지난 9월 오전 7시27분 아파트 앞 화단에서 발견됐다. 아이는 분명 이날 오전 7시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간 줄 알았던 부모는 형석이의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형석이는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늘 상위권을 지켜왔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자기보다 못하던 친구들의 성적이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형석이의 등수는 내려갔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이 어떤 학습지로 공부하는지, 무슨 학원을 다니는지까지 신경 쓰게 됐다.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보다 못하던 애들이 인정받는 것이 못마땅했다. 친구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느껴졌다. 부모님은 크게 혼을 내지 않았지만 “잘하던 애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고 말했다. 형석이는 스스로도 자기가 왜 이렇게 무능한지 알 수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시험공부를 해봐도 성적은 한 등수씩 내려갔다. 형석이는 결국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형석이가 뛰어내린 자리에는 안경과 유서가 담긴 가방이 놓여있었다. ‘엄마, 아빠, 여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엄마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이게 최선입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섭식장애)이 있었던 영주(16·가명)는 지난 8월 자신의 집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당시 집에는 엄마가 함께 있었다. 영주의 방에는 ‘학교 가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를 반복해서 써놓은 노트만 펼쳐져 있었다. 노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도록 볼펜으로 지워진 글들도 있었다. 영주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조금만 먹어도 엄청나게 살이 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게 쪼갠 음식을 조금씩 먹어봐도 이제는 위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음식을 먹지 못한 영주는 거의 매일 아팠다. 학교는 다닌 날보다 다니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어울려 놀 친구도 없었다. 다니던 학교에서는 정신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다. 영주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46일간 치료를 받고, 대안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자기와 어울리는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주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다시 원래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영주는 이방인이었다. 섭식장애와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은 학교 안에 이미 다 퍼진 상태였다. 아이들은 겉으로는 영주를 따돌리지 않았지만 함께 놀자고 권하지도 않았다. 영주는 ‘은따’였다. 영주는 외로웠다. 엄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늘 밥 먹는 문제로 싸웠다. 엄마는 “왜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느냐”며 무조건 밥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엄마는 영주가 왜 우울한지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영주는 저녁식사 전인 오후 6시30분 숨졌다.
지난 3월 어느 날 기석이(17·가명)는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기석이는 2만원을 주고 산 메모리칩 안에 최신 음악을 잔뜩 담아 친구들에게 “음질 정말 좋지 않으냐”며 자랑했다. 친구들이 “좀 만져보자. 나도 좀 써보면 안 되겠느냐”고 했지만 기석이는 단호하게 “그냥 보기만 해”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였던 동수(17·가명)가 기석이에게 “전화 한 통만 하게 빌려주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기석이는 머뭇거리며 휴대전화를 건넸지만 동수는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기석이가 전화기의 잠금장치를 해제하지 않은 것이다. 기석이가 얄미워 동수는 휴대전화 뒤쪽 케이스를 열어 음악이 든 메모리카드를 빼낸 후 돌려줬다. 기석이는 음악을 들으려다 휴대전화 안에 메모리카드가 없다는 알림글이 뜨자 화가 났다. 동수에게 “내 메모리카드 네가 빼갔지, 빨리 내놔”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수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 왜 나보고 그러느냐”며 발뺌했다. 기석이는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교실 밖으로 나가 학생 복지부 선생님을 찾았지만 선생님은 “1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이니 1교시 수업이 끝나면 그때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담임도 “수업이 없을 때 찾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기석이는 1교시 수업 내내 엎드려 있다가 2교시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교실을 나가 옥상으로 향했다. 기석이를 붙잡는 친구도, 선생님도 없었다. 옥상으로 간 기석이는 왼쪽 손바닥에 ‘이런 세상에서 살기 싫습니다. 다음 생에는 평화롭게’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몸을 던졌다.
'자살예방 자료 화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10대가 아프다] “나도 네 나이 때 겪어봤어, 아무것도 아니야” (0) | 2011.12.20 |
---|---|
[스크랩] [10대가 아프다] 집과 학교는 감시·통제의 감옥…‘10대’라는 형벌 (0) | 2011.12.20 |
[스크랩] [10대가 아프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아닌 부모의 기대 따라 사느라 쉽게 무너져” (0) | 2011.12.20 |
[스크랩] [10대가 아프다] “자살시도 아이, 자기 말을 부모가 진심으로 듣자 마음 바꿔” (0) | 2011.12.20 |
[스크랩] [10대가 아프다] “공부보다 공부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힘들어해요” (0) | 201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