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경제거래에 있어서 가치 척도의 기능을 갖고 있다.
가치 척도의 그 기능이 잘 서야
경제 거래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 원할하고 활성화 하는 중요성을 화폐는 포함하고 있다.
16세기에 영국의 토마스 그레샴이라는 사람이 금융업자이며 상인이었던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영국화폐의 품질 문제를 제안하는 가운데에 언급된 표현이 이제는 하나의 경제적 법칙(Gresham's law)이 되었다.
즉
같은 액면가로 두 종류의 화폐가 통용될 경우(하나는 금화, 다른 하나는 값 싼 은화)
분명히 명목상의 가치는 동일하지만
소재에 따라 금화는 소재 가치 때문에 통용에서 사라지는 반면(소재가치 때문에 소유하고 유통을 안시킴)
유통상에 소재의 가치가 낮은 화폐만이 유통에서 오로지 살아 남는다는 법칙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다.
기독 교계에 관한 것이다.
이미 한국 교계는 세계적인 반열에 서 있다.
그많큼 세계적인 안목에서 '구원'의 사명이 한국 교계에 주어진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진품 명품의 교회를 얼마나 자신있게 보일수 있는가?
외형 건물을 말하자는게 아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면서 교회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주관하시는 교회를 말함이다.
짝퉁이 진품처럼 버젓이 지배하는 형국이다.
성도라면 진품의 목사를 주장하고 바래야 한다.
허나
나에 대해 복을 빌어준다면 나 잘되는 길이라면
굳이 다른 것에 눈 돌릴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기복이 바로 이런류인 것이다.
이 땅에 짝퉁이 교회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의 이기심과 자기 기복신앙의 주류 때문이다.
소재가 그리 중요할게 뭐냐는 사고이다.
성경적 신령과 진리의 중심이 뭐 그리 대단한거냐고 주장하는 처사다.
명목적 가치만 추구한다.
그 유명인사의 목사 이름아래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그 명목가치성이 최 우선일 뿐이다.
명목의 가치 - 교패가 자신의 신앙의 중심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어느덧
이 땅에서는
실질적 소재의 중요성 - 신앙의 본질 - 예수의 오심,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미, 예수의 무덤과 부활과 나의 신앙과의 직접적 관계,
성령의 내주 임재와 통치의 원리, 새 예루살렘의 약속에 대한 새 언약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재림 등은
신앙의 중심에서
교회 안의 그 중심과 강단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을
주변의 많은 '교회'에서 우린 쉽게 만날 수 있다.
명목가치의 목사가
실질적 소재가치의 목사를
명목가치의 교회가
소재가치의 교회를
밀어내고 이 땅에서 버젓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화폐는
가치 척도가 그 본질이요 기능이다.
현대는 그 가치척도가 소재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직
명목상의 가치만이 중심이 되고있다.
그렇다고
교계마져
본질은 사라지고
기능도 상실한 채
명목상의 가치만을 보이기에 힘쓰고 추구한다면
'새 언약'을 교회 안에서 폐기시킨 그 죄목은
또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
교회는
새 언약과
십자가를 통한 새 예루살렘에 대한
소재가치가 그 중심으로 서야 만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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